쿠라요시에서 꽤나 알찬 시간을 보냈지만, 유라행 기차를 올라타고 나서는 나름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시라카베도조군 부근을 돌아다니면서 산에서 부터 내려오는 바람에 꽤나 시달렸기 때문이다. 온전히 고요하게 산보했다기보다는 마치 소란스런 삽살개를 10마리 정도 끌고 다닌 것처럼 쉴새 없이 소란스레 내 주변을 훑고 다니는 바람과 동행했다는 것이 맞는 표현일 것이다. 하여 조용한 기차 안에서 등 따시고 마음 편하니 자연스레 다음 산보지에 대한 생각에 잠길 수 있었다.
코난은 내가 아주 좋아하는 만화는 아니다. 특히 만화책으로는 본 적이 없고, 투니버스에서 해주는 애니메이션을 종종 봤을 뿐이었다. 그러다가 극장판 중 하나인 베이커가의 유령을 보고 꽤 재미를 느껴, 극장판 시리즈를 찾아 보는 정도까지 호감을 키웠다. 허나 거의 짧은 에피소드로 해결되는 TV판에는 여전히 흥미를 못 느끼는 정도이기도 하다.
하지만 일본 내에서 명탐정 코난군에 대한 사랑은 상당하다. 극장판 시리즈는 매해 개봉만 하면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하는 건 물론이고, 극장판으로만도 벌써 14편이만들어졌으며, 15편이 현재 준비중이다. TV판 시리즈 역시 1996년 1월부터 현재까지 자그마치 600화에 육박하는 편수가 방영되었다. 여기에 더욱 특이할 만한 점은 매년 특정 지역을 중심으로 한 코난 추리 대회(?) 같은 실제 이벤트도 일본에서 열린다는 것이다.
어떤 것이든지 간에, 이 정도로 오랜 세월 동안 많은 사람들의 사랑과 관심 속에 그 시간을 축적해 온 것은 그 자체로 이미 상상할 수 없는 에너지를 품고 있는 것이기에 호기심+존경(?) 비슷한 감정을 가질 수 밖에 없다. 이렇게 약간의 애정에 조금의 존경심과 적잖은 호기심이 나의 발길을 아오야마 고쇼 후루사토관으로 이끌었다.
유라역은 쿠라요시에서 두 정거장 거리의 역이라 시간은 약 15분 정도 걸렸다. 내리고 보니 다행히 간이역은 아니었으나 (보통열차를 타고 지나가다 보면 아예 역무원이 없는 간이역이 상당히 많다.) 나이든 역무원이 한분 계시는 아주 작은 역이었다. 나무로 지은 오래된 건물은 말할 것도 없고 약 10평 정도 되는 작은 공간에 역무원 창구와 방, 자동발매기, 대합실까지 오밀조밀 붙어 있는 왠지 푸근한 곳이었다. 곳곳에 붙어 있는 코난 포스터와 플랜카드까지도 귀엽게 느껴졌다.
구석에 코난 관련 팜플렛을 정리해 둔 스탠드로 가서 지도를 꺼내 들었다. 지도 상으로 꽤나 멀어보여 역무원 아저씨에게 어떻게 가면 좋을지 물어봤는데 걸어서 15분 정도 걸리니 걸어가라고 하셨다. 게다가 지도를 자세히 보니 가는 길에 꽤나 많은 동상과 기념물들이 있는 듯 했다. 해서 걸어가기로 결정하고 나니 트롤리가 문제였다.
작은 역이다 보니 아무리 둘러봐도 코인 락커 따위는 기대할 수 없었고, 결국 다시 역무원 할아버지(?)를 붙들고 짐을 맡기고 싶다고 어설픈 일본어로 대화를 시도했다. 할아버지 왈 "나가서 오른쪽으로 가면 택시가서 있는 곳에 짐을 맡길 수 있다"고 하셨다. 역을 나가 오른쪽을 보니 택시들이 서 있는 주차장이 있었다. 여기까지 알아들은 내가 참으로 용하다 생각하며 주변을 이리저리 뒤졌는데 왠걸 아무것도 없었다.
다시 돌아가 할아버지에게 없다고 했더니 같은 문장을 들려주시며 있으니 찾아보라고 하신다. 아주 단호한 어조로 얘기하셔 더 이상 묻지 못하고 나와 이리저리 헤매다 보니 길 건너에 택시회사가 보였다. 혹시 저기를 ;얘기한 것인가 하는 생각에 건너가 사무실 쪽으로 걸어가 보니 역시나 문에 짐 맡기는 곳이라고 써 있었다.
약간 멋쩍은 웃음을 지으며 미닫이 문을 열고 들어가니 따뜻한 난로의 온기와 함께 세분의 후덕한 아저씨들이 보였다. 짐을 맡기고 싶다고 했더니 친절한 미소와 함께 짐이 몇 개냐고 물으시고는 트롤리와 작은 가방 하나를 받아들고 번호표를 하나 주셨다. 비용은 200엔. 저렴하지만 늦게 오면 택시회사가 문을 닫으니 주의가 필요.
후루사토관으로 가는 길은 날씨가 좋은 날에 걷게 되면 나름 꽤나 버라이어티하면서 동시에 조용해 여러모로 즐길 맛이 있겠으나, 추운 날 삽살개같이 요란스런 바람을 끌고 다니기에는 너무 쓸쓸하고 머나먼 길이었다는 것을 미리 밝혀둔다. 이동 경로는 아래 지도에 표시한 데로다. 원래는 같은 길을 왕복할 예정이었으나 중간에 황무지(?)를 지나가는 동안 바람에 흙먼지가 너무 많이 날려 돌아오는 길은 후루사토 관 뒷쪽의 마을 길을 택했다.
코난로드를 따라 가는 길 곳곳에는 코난 동상들과 코난을 새겨 넣은 하수구 덮개, 코난 책표지 비석이 있어 굳이 지도를 들지 않고도 갈 수 있었다. 다만 코난 책표지 비석을 다 확인하기 위해서는 원래의 길에서 벗어나 강을 따라 자리잡고 있는 꽤나 긴 마을길을 따라 왕복해야 한다. 늘 그렇듯 수집욕이 발동해 이 길을 걸어갔다 왔는데 여러모로 자잘한 마을길의 재미가 있어 마음에는 들었지만 역시나 바람 때문에 꽤나 체력적으로 힘든 행군이었다.
길 초입에 모습을 드러낸 코난 하수구 덮개!
2005년 홋카이도에서 오징어를 그려 넣은 덮개를 발견한 후 가는 지역마다 꼭 하나씩 찍어온다.
언젠가 하수구 덮개만 모아 놓은 포스트가 올라올 지도 모름모름모름~
가는 길 중간에는 꽤나 큰 강이 가로질러 흐르고 있었다. 날이 좋았다면 강을 따라서 걸어봤을 텐데 세찬 바람에 엄두가 나지 않아 한 블럭 전에 있는 책표지 비석을 모아둔 길로 살짝 들어섰다.매일 아침 동네 사람들이 출근이나 등교를 위해 지나다닐 그 길 위에는 코난의 책표지 비석들이 드문드문 놓여져 있었다. 그리고 푸근하고 소박한 동네 풍경도 함께 자리잡고 있었다.
돌아서는 모퉁이나 길가의 집집마다 요렇게 자랑스레 걸어 놓은 코난 포렴을 만날 수 있었다. 코난이라는 만화에 대한 그들의 사랑과 만화의 아버지가 이 곳에서 태어났다는 것에 그들이 가진 자부심이 놀라웠다.
오래된 우체통과 깜찍한 수제우편함은 길거리에 분위기를 더해 주었다.
타케토시 이용원. 건물은 꽤나 빈티지(?) 한데 입구에 걸어 놓은 가위에는 왠지 모를 센스가 담뿍!
여기는 골목 안에 자리잡고 있던 술도매상(?). 만화에서 종종 나오던 동네 사케야 분위기를 처음 만나 완전 반가웠다. 안쪽까지 들어가 보고 싶은 맘을 꾹꾹 누르느라 혼났다.
요로코롬 쭉쭉 벋은 길 속에 갑자기 휘리릭 꼬부라지는 길도 있었고..
주로 삼거리에 위치한 반사경이 의외의 위치에 있어 내 레이더에 걸렸다.
거울 속에 내 모습과 배경이 되어준 거리의 모습까지 함께 담으니 풍경의 레이어링이라는 새로운 재미가!!
넌 누구니?라는 표정으로 쳐다보던 녀석. 근데 귀엽게 갸우뚱하는 애교는 어디서 배운걸까?
어릴 적에나 보던 커튼이 반가워 찍었는데 겨울옷으로 중무장한 오동통 내가 찍혀버렸다. 쩝!
아! 낡은 함석벽! 난 왜 이리 낡은 것들이 좋은지 모르겠다. 분명 녹슨 것들의 녹 자체는 싫은데 말이다!
그리고 띠로리~ 대망의 코난 책표지 모음이다.
왼쪽은 코난만화 표지로 만들어 놓은 책표지 비석이고 오른쪽은 가는 길에 만난 코난 청동 동상들이다. 다 모았더니 꽤나 볼 만 하구나!!
그리고 이렇게 다시 강가로 돌아왔다. 강을 가로지르는 다리 위로 올라서니 이건 코난 종합선물세트였다.
다리의 가로등 위로는 그 유명한 특수 스케이트 보드를 타며 하늘로 날아오를 거 같은 코난이!!
다리 난간에는 코난과 다른 만화 캐릭터들의 모습으로 제작한 부조가!!
다리의 양 끝에는 역시 유명한 그의 특제 축구공과 함께 한껏 폼잡고 있는 코난이 있었다. 코난 마니아가 오면 흥분할 수 밖에 없을 그런 아이템들이었다.
그리고 그 옆으로 유유히 흐르는 유라강! 강이 꽤 넓어서 놀랐는데 돌아와서 찾아보니, 두 개의 강이 유라에서 합쳐진 후 사진에서 보이는 지점에서 돌아나가 바로 바다로 연결되고 있었다. 코난로드가 평소에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내가 갔을 때는 사람의 흔적을 거의 발견하기 힘든 조용한 길이었다.집들은 꽤나 많았음에도 외곽지여서인지 차들의 왕래만 많고 사람은 어찌나 없던지.
그런데 다리를 건너자 어디서 나타난 건지 귀염성 가득한 꼬맹이들이 나타났다. 마치 코난 일당과 조우하는 듯한 느낌이 들어서 살짝 두근두근 했다. (변태 아저씨의 느낌은 아니라구..T^T) 경계심이 없는 아이들은 명백히 관광객의 차림을 하고 있는(카메라 가방을 짊어지고 카메라를 2개나 이고지고 있는) 나에게 "오하이오" 라며 인사를 건넸다. 괜시리 동네 사람이 된거 같아 설레여 나도 즐겁게 인사를 건넸다.
아이들과 헤어지고 나니 건물들은 점점 사라지고, 양 옆으로 끝도 없니 이어지는 밭과 황무지(?)가 나타났다. 이 즈음에 이르자 정말 말도 안 되게 바람이 심해졌다. 그나마 막아주던 건물들이 사라지니 그 맹위를 더욱 떨치는 것이리라. 간혹 내몸을 휘청거리게 하거나 가볍디 가벼운 모래들을 하늘까지 휘감아 올리는 바람의 재주에 정신없이 눌러대던 카메라도 가방에 꼭꼭 담고 멀리 보이기 시작한 후루사토 관을 향해 잠시 정처없이 발걸음을 이었다.
그렇게 약 5분 정도 눈만 내놓은 히말라야 원정대의 기분으로 걷고 나니 드디어 후루사토관이 눈앞에 나타났다.
특이하게도 외양은 일반적인 박물관이라기보다는 곧 살인사건이 일어나기 직전의 공장과 같았다.
위로 불쑥 솟아 올라와 있는 굴뚝이라든지 약 20도 정도의 경사로 되어 있는 지붕까지. 들어가면 코난들이 로봇처럼 마구 찍어져 나올 거 같았다.
머리 속으로 갖가지 상상을 떠올리며 관에 도착하고 나니 다른 무엇보다도 따듯하고 조용한 실내가 절실해져 우선 1층의 문부터 열고 실내로 들어섰다. 아!!! 녹는구나!! 그리고 무엇보다 조용하구나!! 시끄러운 바람 소리에 정신을 놓아버리기 일보직전이어서 조용함이 그리 반가울 수가 없었다. 이미 5시를 향해 가는 꽤 늦은 시간이라 관 내부에는 약 3명 정도의 손님만 있을 뿐이었다.
비석을 찍겠다고 옆 길로 새서 생각보다 시간을 많이 지체한 탓에 관 내부를 둘러볼 시간은 거의 없었다.
허나 앞에서 밝혔듯이 호기심 수준에서 방문한 곳인지라 내부를 보지 못하는게 그리 아쉽지는 않았다. 오는 길에 있던 그 수많은 아이템들에서 이미 충분히 재미를 느꼈기 때문이기도 했다.
약 20분 정도 기념품 가게와 입구에 있는 코난 장식물들을 구경한 후 귀로를 잡기 위해 관을 나왔다.
관 주위에도 역시나 꽤 많은 아이템들이 자리잡고 있었다. 그 중에는 콜렉션 완성을 위해 꼭 봐야할 코난 동상들도 있어서 주변을 이리저리 돌아다녔는데 그 중에 마지막 남은 하나는 맞은편에 위차한 대학 내 매점 앞에 있었는데 이놈을 찾겠다고 얼추 15분 정도 헤맨거 같다. 평소 지도 잘 보기로 유명한 나이지만 요 놈은 왜 그리 안 찾아지던지.
그러나 결국 요렇게 GET!!
그렇게 개인적으로 나에게 부여했던 미션을 완료한 후 관 뒤쪽으로 나있는 마을 길을 따라 다시 역으로 향했다.
이 마을 길은 아까 들어오던 길에서 만난 꼬마들이 사라졌던 곳으로, 크지는 않지만 다양한 종류의 집들과 아기자기한 문패들, 그리고 말도 안 되게 예쁘고 맘에 드는 정원을 갖춘 곳이 있었다. 시골 마을 만세~~
아까보다는 여유롭게 집들 사이사이로 바람도 틈틈이 피하며 역으로 돌아오는 길은 생각보다 즐거웠다.
그 작은 여유 때문인지 아까 갈때는 보이지 않던 다른 모습들도 눈에 들어왔다. 역시 마음 먹기 달린 것이다.
드디어 역에 도착!! 여유롭게 돌아왔다고는 해도 역시 추운건 어쩔 수 없다. 실내의 따뜻한 공기가 사무치게 행복했다. 두둥..근데 요나고로 가는 기차가 약 10분전에 떠났고 다음 기차는 거의 50여분을 기다려야 했다. 여행 다닐 때 제일 아까운 시간은 바로 타야할 교통편을 기다리는 것이다. 게다가 이번엔 50분이라니!! 사실 찍어간 시간표만 제대로 확인했더도 됐는데 추운 날씨에 귀찮아 제대로 시간을 확인하지 않은 나의 불찰이었다.
잠시 일찌감치 수집 리스트에서 제외해두었던 역 뒤 쪽에 있다는 마지막 동상을 찍으러 갈까 했지만, 이미 따뜻한 공기로 녹아버린 몸은 나가길 완강히 거부했다. 결국 나의 짐들과 함께 역안 의자에 엉덩이를 붙이고 찍은 사진들을 점검하며 하염없이 열차만을 기다렸다.
덕분에 아기자기 기차역 구석구석을 살펴볼 기회도 얻었고, 중간중간 나와 열차를 같이 타고 갈 할머니나 여고생들이 들어오면서, 구경을 빙자한 도촬(?)로 조금은 덜 지루하게 보낼 수 있었다.
그렇게 내가 방문한 제일 작은 역에서 제일 긴 시간을 나름 만족스럽게 보낸 후 요나고행 완행 열차에 몸을 실었다. 비용을 줄이기 위한 선택으로 인해 이번 여행에서는 거의 완행 열차가 나의 발이 되어주었는데, 그러다 보니 당연히 기차에서 보내는 시간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었다.
그러나 맞춤맞게 해가 지면서 가는 동안 심심찮게 사진을 찍으며 요나고를 기다릴 수 있었는데, 다음은 그렇게 찍은 사진들이다.
역에서 홀로 기차를 기다리던 그녀. 완행 열차를 보내는 것 보니 그녀의 집은 아마도 요나고?
하늘 위로 길게 늘어뜨려져 있던 비행기 구름. 어스름하게 지는 저녁해 위로 하얀 실금을 그렸다.
갑자기 타나난 풍력발전기들. 있는 줄 몰랐기에 놀랐고, 노을을 배경으로 한 모습이 아름다워 감동했다.
하늘은 점점 붉게 물들며 밤을 부르고 있었다!
저 너머로 살짝쿵 모습을 드러낸 바다! 그래, 이렇게 가까웠구나!
유라역에서 기차에 탄 시간은 5시 30분 정도였는데 요나고 도착은 약 1시간 30분 정도가 걸린 7시였다. 역을 둘러볼 새도 없이 서둘러 미리 알아본 역 앞 버스 정류장으로 나왔다.
오늘의 숙소가 있는 가이케 온천행 버스는 다행히 곧 도착하여 약 20분 후에는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었다. 정류장에 도착해 숙소로 전화를 걸었더니 바로 송영버스가 나왔다.
이곳이 오늘의 숙소인 도코엔 료칸!! 눈 앞에 숙소가 보이자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드디어 힘들었던 첫날 일정도 이렇게 잘 마무리가 되는구나!
(숙소에 대한 자세한 리뷰는 7장을 기대하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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