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ViE! PaSSiOn!
[거울속으로]2차원적 혹은 다차원적 세계를 우리는 동시에 살아가고 있는 것인가???
뽀르꼬
2004. 5. 7. 17:55
으악!! 이놈의 영화를 보고 난 후 제목이 왜이리 길어져 버렸는지..쩝!!
허나..이 영화를 보면서 가장 많이 생각했던 부분이라고
얘기하면 작은 변명이 될련지...^^;;;
영화 얘기를 하기에 앞서 나는 조촐한 내 꿈이야기 몇가지를 해볼까 한다...나는 정말 희한한 꿈을 잘꾼다..-_-;;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버금가게 액션과 공포가 살아있는 좀비이야기를 꿈꾸기도 하고..엄청난 이무기의 뱃속을 헤매다가 겨우겨우 나온다던지..커다란 문어발로 이루어진 길을 따라 달리는 기차를 타고 내리면 그 문어가 갑자기 움직여 바다로 들어갔다가 나를 공격한다던지 하는 정말 황당하기 그지없는 세상들이 내 꿈속에서는 곧잘 펼쳐진다.
그 중 압권은, 한 3년 전이던가, 꿈속에서 나는 참으로 평범한 사람이었는데 어느날 "이세계"를 엿보는 틈을 알아버리게 되었다. 마치 남들은 못 보는 귀신을 보는 것처럼 현재 세상사람들은 인지 못하는 이 세계의 공격을 내가 먼저 알아챘고 나와 같은 사람이 몇명 존재하여 그들과 같이 그 공격에 앞서 그것을 막기위해 악전고투하는 내용의 꿈을 정말 리얼하게 밤새도록 꾸었다. 다음 날 온몸이 얻어맞은 것처럼 아픈것은 당연한 일..그리고 그 꿈을 꾸고 난 후 마치 장자의 호접몽처럼 잠시 나의 현실과 환상이라는 경계를 모호하게 느꼈었다..그 꿈속의 내가 진짜일까 아니면 그것을 꿈으로 느끼는 내가 진짜일까. 어쩌면 답답한 현실에 대한 구원의 형태로 스스로를 영웅시하는 꿈일 수도 있지만 의식의 저너머에서 일어나는 나에 대해서 누가 과연 진실을 이야기 해줄 수 있을까?
이런 의문을 풀고 풀고 또 풀어가다 보면 영화 <거울속으로>에서처럼 거울이라는 얇은 막을 기점으로 한 의식의 분열은 필연적으로 일어날 법도 하다. 이 시점에서 다시 다른 얘기를 하나 풀어보자. <내사랑 앨리스>라는 제목으로 알려져 있는 "나의 지구를 지켜줘"라는 일본 만화는 약 100여전 전의 이야기와 현재의 이야기가 계속적으로 중첩되면서 꿈과 현실이라는 형태로 다시 구분되어 나타난다. 즉 현재는 현실, 그리고 과거는 꿈이라는 형태로. 하지만 누가 알 수 있을까. 인지의 주체가 현재의 나라고. 가령 현재의 이야기 플롯이 과거의 내가 꾸고 있는 꿈일 가능성도 다분한 것이다. 즉 이야기의 주체는 현재의 내가 아닌 과거의 내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이런 분열적 중첩 상태를 주인공인 "링"은 절규로 대신한다. 동료와 연인이 모두 죽고 난 후 죽음의 별에서 혼자 목숨을 지탱해야 했던 그 시간을(혹은 세계를) 기억해내며 지금의 내가 그것을 꿈꾸는 것인지 그때의 내가 지금을 꿈꾸는 것인지 모르겠다며 절규섞인 울음을 토해내는 것이다.
<거울 속으로>에서의 주인공은 어떨까? 그는 밤마다 실수로 거울속의 범인을 쏴 파트너를 잃어야 했던 그 순간을 반복적으로 꿈꾼다. 그리고 어느날 그가 꾼 꿈속에서 범인은 실제로 총을 맞고 쓰러져 죽는다. 이 순간 그의 의식은 잠재의식 너머의 또 다른 자아를 인식한 것일지도 모른다. 의식 너머의 그는 실제로 그 범인을 죽였으므로...이 순간부터 어쩌면 그는 거울 속 그와 거울 밖 그로, 다른 경우로 생각해본다면 다른 차원의 그와 또 다른 차원의 그로..영화에서는 그 차원을 거울 속과 거울 밖의 2차원으로 분리했지만 세계의 차원의 숫자는 아무도 짐작할 수 없다. 거울 밖 의식을 가진 우리가 거울 속 세계를 짐작할 수 없는 것처럼.
기본적으로 영화는 죄의식과 그에 대한 복수를 기둥줄거리로 하고 있지만 삶의 자극적인 순간에 일어나는 의식의 분열을 실제적인 텍스트 중심으로 접근하면서 그런 현상을 정신병이 아닌 하나의 실증화된 세계로 인식하게 해준다. 이로 인해 영화를 보고 나온 이들이 모두 의식의 너머와 의식의 이쪽의 두가지 세계에 분리와 구별에 대해 열을 올리고 있지만 그 조차도 과연 얼마나 유의미한 것인가? 의문이 든다.
어느 날 꾸게된 쌈박하고 리얼한 꿈 한번으로 그런 모든 분석은 무의미해지지 않을까 하기 때문이다. 마치 호접몽을 꾸고 난 후의 장자처럼 말이다.
허나..이 영화를 보면서 가장 많이 생각했던 부분이라고
얘기하면 작은 변명이 될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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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얘기를 하기에 앞서 나는 조촐한 내 꿈이야기 몇가지를 해볼까 한다...나는 정말 희한한 꿈을 잘꾼다..-_-;;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버금가게 액션과 공포가 살아있는 좀비이야기를 꿈꾸기도 하고..엄청난 이무기의 뱃속을 헤매다가 겨우겨우 나온다던지..커다란 문어발로 이루어진 길을 따라 달리는 기차를 타고 내리면 그 문어가 갑자기 움직여 바다로 들어갔다가 나를 공격한다던지 하는 정말 황당하기 그지없는 세상들이 내 꿈속에서는 곧잘 펼쳐진다.
그 중 압권은, 한 3년 전이던가, 꿈속에서 나는 참으로 평범한 사람이었는데 어느날 "이세계"를 엿보는 틈을 알아버리게 되었다. 마치 남들은 못 보는 귀신을 보는 것처럼 현재 세상사람들은 인지 못하는 이 세계의 공격을 내가 먼저 알아챘고 나와 같은 사람이 몇명 존재하여 그들과 같이 그 공격에 앞서 그것을 막기위해 악전고투하는 내용의 꿈을 정말 리얼하게 밤새도록 꾸었다. 다음 날 온몸이 얻어맞은 것처럼 아픈것은 당연한 일..그리고 그 꿈을 꾸고 난 후 마치 장자의 호접몽처럼 잠시 나의 현실과 환상이라는 경계를 모호하게 느꼈었다..그 꿈속의 내가 진짜일까 아니면 그것을 꿈으로 느끼는 내가 진짜일까. 어쩌면 답답한 현실에 대한 구원의 형태로 스스로를 영웅시하는 꿈일 수도 있지만 의식의 저너머에서 일어나는 나에 대해서 누가 과연 진실을 이야기 해줄 수 있을까?
이런 의문을 풀고 풀고 또 풀어가다 보면 영화 <거울속으로>에서처럼 거울이라는 얇은 막을 기점으로 한 의식의 분열은 필연적으로 일어날 법도 하다. 이 시점에서 다시 다른 얘기를 하나 풀어보자. <내사랑 앨리스>라는 제목으로 알려져 있는 "나의 지구를 지켜줘"라는 일본 만화는 약 100여전 전의 이야기와 현재의 이야기가 계속적으로 중첩되면서 꿈과 현실이라는 형태로 다시 구분되어 나타난다. 즉 현재는 현실, 그리고 과거는 꿈이라는 형태로. 하지만 누가 알 수 있을까. 인지의 주체가 현재의 나라고. 가령 현재의 이야기 플롯이 과거의 내가 꾸고 있는 꿈일 가능성도 다분한 것이다. 즉 이야기의 주체는 현재의 내가 아닌 과거의 내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이런 분열적 중첩 상태를 주인공인 "링"은 절규로 대신한다. 동료와 연인이 모두 죽고 난 후 죽음의 별에서 혼자 목숨을 지탱해야 했던 그 시간을(혹은 세계를) 기억해내며 지금의 내가 그것을 꿈꾸는 것인지 그때의 내가 지금을 꿈꾸는 것인지 모르겠다며 절규섞인 울음을 토해내는 것이다.
<거울 속으로>에서의 주인공은 어떨까? 그는 밤마다 실수로 거울속의 범인을 쏴 파트너를 잃어야 했던 그 순간을 반복적으로 꿈꾼다. 그리고 어느날 그가 꾼 꿈속에서 범인은 실제로 총을 맞고 쓰러져 죽는다. 이 순간 그의 의식은 잠재의식 너머의 또 다른 자아를 인식한 것일지도 모른다. 의식 너머의 그는 실제로 그 범인을 죽였으므로...이 순간부터 어쩌면 그는 거울 속 그와 거울 밖 그로, 다른 경우로 생각해본다면 다른 차원의 그와 또 다른 차원의 그로..영화에서는 그 차원을 거울 속과 거울 밖의 2차원으로 분리했지만 세계의 차원의 숫자는 아무도 짐작할 수 없다. 거울 밖 의식을 가진 우리가 거울 속 세계를 짐작할 수 없는 것처럼.
기본적으로 영화는 죄의식과 그에 대한 복수를 기둥줄거리로 하고 있지만 삶의 자극적인 순간에 일어나는 의식의 분열을 실제적인 텍스트 중심으로 접근하면서 그런 현상을 정신병이 아닌 하나의 실증화된 세계로 인식하게 해준다. 이로 인해 영화를 보고 나온 이들이 모두 의식의 너머와 의식의 이쪽의 두가지 세계에 분리와 구별에 대해 열을 올리고 있지만 그 조차도 과연 얼마나 유의미한 것인가? 의문이 든다.
어느 날 꾸게된 쌈박하고 리얼한 꿈 한번으로 그런 모든 분석은 무의미해지지 않을까 하기 때문이다. 마치 호접몽을 꾸고 난 후의 장자처럼 말이다.